특별기고

K-방산의 다음 경쟁력은 ‘공동 전력’이다

최근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린 MSPO와 미국 워싱턴의 AUSA를 잇달아 찾으며, 국제 방산시장이 비슷한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전시회의 규모와 성격은 다르다. 그러나 양쪽 현장에서 반복해서 마주친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누가 필요한 장비를 제때 공급하고, 누가 현지에서 그 장비를 계속 움직이게 하며, 누가 데이터와 기술의 통제권을 함께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MSPO는 이제 중·동 유럽의 지역 전시회라는 표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2026년 전시회에는 43개국 1,209개 기업, 4만 5천 명의 방문객, 43개국의 58개 공식대표단이 참여했다. 주최 측은 MSPO를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방산전시회로 평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낀 분위기는 단순한 장비 소개를 넘어섰다. 유럽 동부전선의 안보 불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 조달 지연, 현지 생산과 정비 역량에 대한 요구가 기업·정부·군 관계자들의 핵심 화두였다.

폴란드가 이런 변화의 중심에 선 이유도 분명하다. NATO의 2025년 통계에 따르면 폴란드의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4.48% 수준으로, 동맹 내에서도 매우 높은 방위투자 의지를 보이고 있다. NATO는 2025년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GDP의 5%를 핵심 국방과 국방·안보 관련 투자에 배정하기로 합의했다. 이 가운데 최소 3.5%는 핵심 국방요건에, 최대 1.5%는 중요 인프라·회복력·혁신·방산기반 강화 등에 쓰도록 했다. 유럽의 재무장은 일시적 분위기가 아니라, 생산능력·탄약·방공·인력·군수체계까지 다시 구축하는 장기 과제가 된 것이다.

MSPO 현장은 그 장기 과제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구매국은 더 이상 ‘좋은 장비 한 대’를 원하지 않는다. 신속한 초도 납품은 물론, 현지 정비(MRO), 부품 재고, 정비인력 교육, 전자·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전시 재보급, 자국 산업 참여까지 한 묶음으로 요구한다. 유럽연합도 Readiness 2030을 통해 방공·미사일방어, 드론·대드론, 사이버·AI·전자전, 포병, 지상전투, 탄약·미사일을 우선 능력 분야로 제시하며 공동조달과 생산능력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유럽 시장은 단순한 구매시장이 아니라 전력의 가동률을 함께 책임질 산업 파트너를 찾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워싱턴의 AUSA는 같은 변화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었다. AUSA는 미 육군 중심의 전시회이지만, 2026년 주최 측 기준 4만 명 이상이 참가하고 750개 이상의 전시와 100개국 이상 대표가 모이는 글로벌 지상군·방산 네트워크의 장이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전시된 플랫폼의 크기만이 아니었다. 무인체계, 대드론, 전자전, 센서, AI 기반 지휘통제(C2), 자율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공급망과 산업기반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MSPO가 ‘유럽 동부전선에 무엇을 얼마나 빨리 배치할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 질문을 던진다면, AUSA는 ‘그 전력을 어떤 데이터·소프트웨어·산업 생태계로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인가’를 묻고 있었다.

두 전시회가 한국 방산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의 경쟁력은 우수한 제조 역량, 경쟁력 있는 가격, 비교적 빠른 납기에 있다. 폴란드 국방부가 2022년 한국과의 K2 전차, K9 자주포, FA-50 항공기 계약을 발표하면서 신속한 인도와 폴란드 산업 참여·현지 생산을 함께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방산은 이미 유럽 시장에서 ‘필요할 때 납품할 수 있는 공급자’라는 신뢰를 쌓았다. 이제는 그 신뢰를 ‘현지에서 함께 운용하고, 함께 고치며, 함께 개량하는 파트너’의 지위로 발전시켜야 한다.

첫째, 한·폴란드 협력은 플랫폼 수출협력에서 수명주기 협력으로 옮겨가야 한다. K2·K9·FA-50·천무 같은 체계는 최초 인도보다 이후 20~30년에 걸친 가동률 관리가 더 중요하다. 폴란드 현지의 정비센터, 부품 창고, 교육훈련 체계, 성능개량 권한, 시험평가 역량을 단계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것이 폴란드의 전력화 속도를 높이고, 한국 기업에는 지속 가능한 서비스·업그레이드 시장을 만든다.

둘째, 기존 플랫폼 위에 드론전 대응 능력을 얹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차와 포병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차와 포병이 드론·전자전·센서·방공체계와 연결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K2·K9과 지상 지휘소에 소형 드론 탐지, 전파 탐지와 재밍, 요격수단, AI 기반 위협 우선순위화, 전술 C2를 통합하는 사업은 한국과 폴란드가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과제다. 폴란드의 무인체계 운용 경험과 한국의 전자·센서·양산 역량이 결합될 때, 단일 장비가 아닌 실전형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셋째, 한국은 미국과의 협력에서도 ‘동맹 기반 자율성’을 설계해야 한다. 이는 미국과 거리를 두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기술력·상호운용성·시장 접근성을 활용하되, 핵심 데이터, 암호, 정비권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권한을 계약과 체계 설계 단계에서 확보하자는 의미다. 미국 진출 역시 완제품 정면경쟁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조선, 부품, 전자장비, 정비, 공급망 복원, 인력양성처럼 미국의 방산 산업기반을 실제로 강화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선택과 집중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넷째, 협력의 문은 양방향으로 열려야 한다. 한국이 폴란드의 무인체계, 소프트웨어, 시험·교육 역량을 적정 분야에서 도입·실증하고, 폴란드는 한국의 플랫폼과 생산·전자기술을 결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수출국’과 ‘도입국’이라는 단순한 구분을 넘어서야 공동개발의 신뢰가 생긴다. 그 신뢰는 다시 NATO 상호운용성, 유럽 제3국 공동진출, 그리고 중동·아프리카 등 새로운 시장에서의 협력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선택은 결국 분명하다. 가격과 납기만으로 승부하는 수출모델은 출발점으로는 유효하지만, 도착점이 될 수 없다. 한국형 국제방산 협력은 장비, 군수, 소프트웨어, 데이터, 인력, 현지 산업을 하나의 전력 패키지로 묶어야 한다. 키엘체의 MSPO와 워싱턴의 AUSA가 보여준 변화는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K-방산이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더 팔 것인가’가 아니다. ‘누구와 어떤 전력을 함께 만들고, 그 전력을 누가 30년 동안 운용하게 할 것인가’다. 장비 한 대의 수출은 계약으로 끝나지만, 공동 운용·정비·개량 체계는 국가 간 전략적 신뢰를 만든다.

김용선 예비역 대령은 안보·국방·방산 전문가다. 前 나토·EU 국방 무관 및 주미 군수 무관을 역임했다.

원문 출처

이 글은 반창고뉴스(2026년 10월 19일)에 게재된 필자의 칼럼을 옮겨 실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