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강군으로 가는 길 — 전역군인의 전문성을 국가의 동력으로
편집자 주 — 이 서한은 2026-09-20 시점 자료입니다. 최신 수치(중·장기복무 전역군인 연평균 9,000여 명·2025년 10,821명)와 구상은 비전 설계도(2026.10.)를 따릅니다.
최근 5년 평균으로 해마다 7,700여 명의 중·장기복무 직업군인이 군문을 나선다(2023년 9,481명). 그들이 지니고 나가는 것은 계급장이 아니다. 위협을 읽어 대응 개념으로 바꾸던 사고의 습관, 수천억 원짜리 사업을 굴려 본 경험, 수백 명을 움직여 본 조직 운영의 감각이다. 어느 대학도 가르치지 않고 어떤 이력서로도 다 옮겨 적을 수 없는 자산이다.
그 자산은 지금 해마다 조용히 흩어지고 있다.
이 글은 그것을 붙잡아 국가의 동력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구상이다. 판단의 근거가 된 상황 평가에서 시작해, 도달하려는 지점과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차례로 적는다.
Ⅰ. 전략상황 평가
1. 기회 — 한국은 이미 인도태평양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 70여 년, 대한민국은 100만 이상의 대군과 마주한 채 분단을 견뎌 온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였다. 1990년 세계가 냉전의 종식을 맞았을 때에도 휴전선은 그대로였다. 그 긴 대치는 값비싼 부담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어떤 나라도 갖지 못한 것을 남겼다. 실제 위협 앞에서 검증된 운용 능력과 전쟁 준비태세, 그리고 그 위에서 자란 방산 기술이다.
그 축적이 지금 값으로 드러나고 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25년 방산 수출은 154억 달러로, 2022년 이후 2년 연속 줄었다가 3년 만에 반등했다. 정부는 2030년 200억 달러와 세계 4위를 목표로 잡았다. 이달 초 발표된 글로벌 방산기업 100대 순위에는 한화(16위)·LIG넥스원(52위)·현대로템(61위)·한국항공우주산업(74위)이 2년 연속 올랐다. 무기 판매에 그치지 않는다. HJ중공업이 4만 톤급 군수지원함 정비 사업으로 미 해군의 심사를 통과했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도 각각 두 건의 실적을 쌓았다. 2029년이면 세계 해군 정비·수리·창정비 시장은 87조 원 규모가 된다.
이 자리를 떠받치는 것은 무기만이 아니다. 오늘의 군사력은 산업 기술 위에 선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배터리, 통신, 로봇, 그리고 이 모두를 실물로 바꾸는 제조 역량이 그것이다. 한국은 이 분야들을 한 나라 안에 동시에 갖추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의 약 70퍼센트를, 인공지능 연산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는 약 80퍼센트를 공급한다. 제조 현장의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 명당 1,220대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2위 싱가포르가 818대, 3위 독일이 449대, 4위 일본이 446대다. 배터리에서는 중국이 앞서 있으나 한국 3사는 중국 밖 시장의 주된 공급자다. 어느 한 분야의 순위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한 나라 안에서 서로 맞물린다는 사실이다. 군사와 산업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그 결합 자체가 전략 자산이다.
그리고 이 자산이 지금 특별한 값을 갖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중국의 국방력과 기술력은 여러 분야에서 이미 압도적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억제가 자유진영 시장에서 중국의 자리를 좁히고 있다. 2024년 12월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중국 등의 기관 140곳을 한꺼번에 수출통제 명단에 추가했고, 2026년 들어 집행을 더 강화했다. 2025년 12월 22일 유예기간이 끝나면서 중국산 무인기는 미국의 연방자금이 들어가는 사업 전반에서 배제됐다. 2026년부터 적용되는 해외우려기관 규정은 중국계 기업의 부품이 섞인 사업에서 세액공제를 통째로 걷어 간다. 유럽연합 역시 안보를 사유로 외국 공급자를 공공조달에서 배제할 법적 경로를 만들고 있다.
기술이 좋아도 팔 수 없는 시장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누군가 채워야 한다. 그 자리에 설 수 있으려면 자유진영의 신뢰를 받으면서, 동시에 물건을 실제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 둘을 함께 갖춘 나라는 많지 않다.
여기에 문화의 힘이 더해진다. 브랜드파이낸스의 2026년 소프트파워 지수에서 한국은 11위,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는 7위에 올랐다. 우방국과 일할 때 이 호감은 계약서에 적히지 않는 자산으로 작동한다.
미·중 경쟁의 무게중심이 인도태평양으로 옮겨 온 지금, 한국은 안보·국방·방산 어느 축에서 보아도 이 지역의 중심국가다. 기회는 이미 와 있다.
2. 간극 — 전문성은 있는데, 그것을 엮을 판이 부족하다
전역자 개인에게 닿는 지원을 보면 이유가 보인다. 국가보훈부의 제대군인 지원은 교육훈련 중심이다. 전문기관 위탁교육은 평생 1인 3과정에 교육비가 일반 분야 120만 원, 4차 산업혁명 분야 180만 원 한도이고, 이와 별도로 직업능력개발 교육비를 1인당 150만 원 범위에서 지원한다. 올해 제대군인 창업 경진대회의 상금은 최우수상 600만 원을 포함해 전부 2,000만 원이었다.
흩어짐이 이를 더 악화시킨다. 전역자들은 저마다 희소한 경력을 지니고도 개인 자격으로 흩어진다. 누구는 대기업 고문으로, 누구는 중소기업 자문으로, 대부분은 아무 연결 없이 사라진다. 군의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옮길 훈련을 받을 곳을 찾기 어렵고, 혼자 감당해야 할 실패의 비용은 개인이 지기에 너무 크다. 역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역량을 엮을 판이 부족해서 생기는 손실이다.
3. 시간 — 창은 저절로 열려 있지 않다
이스라엘이 이 문제를 먼저 풀었다. 흔히 "창업국가"라 부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연이 아니라 설계였다.
신호정보 부대인 8200 출신들이 세운 회사는 1,000개가 넘는다. 지난 10년간 1억 달러 이상에 인수된 이스라엘 기업의 창업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 부대를 거쳤고, 그들이 세운 기업의 평균 인수 가격은 3억 1,700만 달러에 이른다. 체크포인트, 팔로알토 네트웍스, 사이버아크가 여기서 나왔고, 구글에 320억 달러로 넘어간 위즈도 마찬가지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 연구개발과 야전 사이의 간극 때문에 치른 대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1979년 시작된 탈피오트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창업자 배출 비율을 기록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스탠퍼드 MBA의 다섯 배이며, 이스라엘 유니콘의 약 10퍼센트가 이들의 손에서 나왔다. 소프트웨어 인력을 길러 내는 마므람 출신들은 2021년 기준 이스라엘 유니콘의 4분의 1을 창업했다.
배울 것은 부대의 이름이 아니라 세 가지 구조다. 최고 인재를 실제 문제 위에서 훈련시켰고, 전역 이후에도 서로를 아는 네트워크가 끊기지 않았으며, 그 네트워크에 자본과 시장이 붙을 통로가 있었다.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과 연결이 먼저였다.
반대 방향의 사례도 함께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 재향군인은 고용 기업의 5.4퍼센트를 소유하고, 160만 개가 넘는 기업에서 330만 명을 고용하며 9,00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낸다. 자영업에 나설 확률도 비재향군인보다 45퍼센트 높다. 그런데 세대를 나누어 보면 경고가 드러난다. 2차 세계대전 세대는 절반 가까이가, 한국전쟁 세대는 40퍼센트가 창업했지만, 9·11 이후 세대는 4.5퍼센트만이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역량이 줄어서가 아니다. 연결과 지원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기회의 창은 저절로 열려 있지 않다. 지금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도 같은 곡선을 그린다.
Ⅱ. 비전과 목표
비전
전역이 은퇴가 아니라 출발선이 되는 나라.
군에서 얻은 전문성이 군을 떠나는 순간 사라지지 않고, 기업과 기술과 자본으로 이어져 다시 군과 국가로 돌아오는 순환. 그 순환을 만드는 것이 타이거딘 넥서스를 세운 이유다.
도달하려는 상태
향후 10년 안에 다음이 사실이 되도록 한다.
첫째, 전역군인의 창업이 예외가 아니라 경로가 된다. 군문을 나서는 이가 "무엇을 할까"를 혼자 고민하지 않고, 이미 걸어간 사람들의 길과 함께 일할 팀을 만나게 한다.
둘째, 국방 분야에 전문 컨설팅 산업이 선다. 미국에는 부즈앨런 해밀턴이 있다. 2024 회계연도 매출 약 107억 달러 가운데 97퍼센트가 연방정부에서 나오고, 국방이 49퍼센트, 정보 분야가 16퍼센트다. 군과 정부를 상대로 전략·조직·기술을 설계하는 일이 그 규모의 산업으로 성립한다는 증거다. 한국에는 아직 그런 회사가 없다. 군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군 밖에 있는데도 없다.
셋째, 한국이 인도태평양의 국방 산업 허브로 기능한다. 이 지역에는 앞선 나라가 여럿이다. 2026년 국방예산으로만 보면 호주가 452억 달러, 한국이 65조 8,642억 원(약 447억 달러), 싱가포르가 195억 달러이며, 일본과 인도는 그보다 앞선다. 그러나 허브의 조건은 예산의 크기가 아니다. 실제 위협 앞에서 검증된 전면적 대비태세, 무기를 설계하고 만들어 파는 산업, 그리고 그 무기를 떠받치는 이중목적 기술. 이 셋을 한 나라 안에 함께 가진 나라가 역내에 몇이나 되는지가 조건이다. 한국은 그 셋을 모두 가졌다. 무엇보다 이것은 우리가 원해서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중 억제가 자유진영 시장에 만들어 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나라가 몇 없어서 남겨진 자리다. 구조가 불러들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자리는 다른 나라로 넘어간다. 우리 기술과 운용 경험이 우방국의 필요와 만나는 자리에 그 둘을 다 아는 전역군인이 서는 것, 그것이 허브가 사람의 모습으로 구현되는 방식이다.
넷째, 실패가 개인의 파산이 되지 않는다. 위험을 구조가 나누어 지고, 먼저 성공한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의 발판이 된다.
Ⅲ. 과업
비전에서 과업이 나온다. 흩어진 전역군인의 역량을 계급이 아니라 기능으로 다시 엮어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이게 하고, 군의 언어를 시장의 언어로 옮기도록 돕는 것이다. 군 출신만이 아니라 과학자·민간 기업가·법률가와 한 팀이 될 때 전문성은 새로운 가치가 되고, 민간이 먼저 사례를 만들고 성과를 보이면 제도는 그 길을 따라온다.
Ⅳ. 맺으며
거의 모든 산업이 군과 맞닿아 있다. 통신, 재료, 소프트웨어, 물류, 의료, 교육, 보안, 정비, 시설, 항공, 조선, 우주, 인공지능까지 그렇다. 창업의 폭이 넓고 협업의 조합도 많다. 없는 것은 기회가 아니라 그 기회를 사람과 이어 줄 판이다.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 일은 몇 사람이 돈을 벌자는 것이 아니다. 군이 이롭고, 사회가 부요로워지고, 국방이 튼튼해지는 순환을 만들자는 것이다. 야전의 요구를 아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해법을 만들어 군으로 되돌려 줄 때 군이 강해진다. 흩어져 사라지던 고급 인력이 일자리를 만드는 쪽으로 돌아설 때 사회가 부요로워진다. 기술과 산업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이 곧 억지력이다.
우리에게는 이스라엘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더 크고 더 오래 축적된 자산이 있다. 70년 동안 실제 위협 앞에서 단련된 대군, 세계가 값을 인정한 방위산업, 인도태평양의 지정학적 중심이라는 자리. 없는 것은 잠재력이 아니라 그 잠재력을 엮는 판이다.
나는 군에서 받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대한민국 육군은 나에게 판단하는 법과 책임지는 법을 가르쳤다. 그 빚을 갚을 방법을 찾다가 여기에 이르렀고, 이제 법인을 세워 첫걸음을 뗀다.
군복을 벗었으나 아직 다 쓰지 못한 역량을 지닌 이들, 그 역량의 값을 알아보는 기업들, 국방이 산업과 함께 강해져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가 남길 것은 회사 하나가 아니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걸어갈 길이다.
참고 자료
본문의 수치는 아래 자료에 근거한다. 상황 판단과 구상은 필자의 견해다. 출처 표시: 1차 = 정부·기업·기관의 공식 발표와 자료, 보도 = 언론 보도, 2차 = 제3자의 해설·분석(방법론).
- 서울경제 — 방사청 “2025년 방산수출 154억 달러”(2022~2025년 연도별 실적) 보도
- K-공감(정부 정책주간지) — 2030년까지 방위산업 4대 강국, 방산 수출 수주 200억 달러 1차
- 서울신문 — K방산 빅4, 2년째 글로벌 톱100 보도
- 헤럴드경제 — 한화, 세계 방산기업 16위 보도
- 서울신문 — HJ중공업, 미 해군 MRO 진출 보도
- 뉴스1 — K-방산, 폴란드 현지생산·정비 박차 보도
- e-나라지표 — 제대군인 현황(2024-12-06 갱신: 최근 5년 평균·2023년 수치) 1차
- 국가보훈부 — 교육훈련지원(전문기관 위탁교육·직업능력개발 교육비) 1차
-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 — 2024-12-02 발표, 수출통제 명단(Entity List) 140곳 추가 1차
- 미 의회조사국(CRS) —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통제 1차
- Kharon — BIS의 2026년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집행 강화 2차
- UAV Coach — 미국의 중국산 무인기 배제(2025-12-22 유예 종료, FCC 커버드 리스트) 2차
- K&L Gates — 해외우려기관(FEOC) 규정과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배제 2차
- Brussels Signal — EU, 안보 사유 공공조달 배제 법 개편 추진 보도
-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 — World Robotics 2025, 국가별 로봇 밀도 1차
- 카운터포인트리서치 — 글로벌 D램·HBM 점유율 1차
- Brand Finance — Global Soft Power Index 2026, 한국 11위 1차
- Aviation Week — 한국 2026년 국방예산 65조 8,642억 원 보도
- Breaking Defense — 호주 2026-27 국방예산 452억 달러 보도
- Janes — 싱가포르 2026년 국방예산 195억 달러 보도
- Calcalist — From Unit 8200 to Wiz's $32B exit 보도
- Forbes — Inside Israel's Secret Startup Machine 보도
- The Jerusalem Post — IDF Talpiot program excels in producing entrepreneurs 보도
- U.S. Census Bureau — Veteran-Owned Businesses 1차
- U.S. SBA Office of Advocacy — Veteran Ownership Statistics 1차
- Booz Allen Hamilton — 사업구조·매출 구성 2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