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MSPO 2026이 보여준 '유럽 방산정책의 전환과 한국 방산의 다음 과제'

폴란드 키엘체에서 9월 8일부터 11일까지 열린 제34회 MSPO 2026은 규모만으로도 유럽 방산시장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주최 측은 43개국 1,209개 기업이 참여했고, 60여 개국에서 4만 5,000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본질은 참가기업 수나 전시 면적에 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전 이후 유럽이 방산을 바라보는 문법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유럽은 더 이상 필요한 무기를 해외에서 신속히 구매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탄약을 누가 계속 만들고, 고장 난 장비를 어디서 수리하며, 전장 교훈을 얼마나 빨리 설계에 반영하고, 동맹국과 어떤 기준으로 공동 조달할 것인가를 함께 묻고 있다.

MSPO 현장에서 확인된 변화는 ‘구매’에서 ‘지속 가능한 전력생태계’로의 이동이다. 9월 11일 폴란드 군비청과 MESKO는 PIORUN 휴대용 대공미사일 및 발사장치, 교육·군수지원 패키지에 관한 약 30억 즈워티(1.9조 원) 규모의 이행계약을 체결했다. 납기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이며, 이 계약은 EU의 SAFE 공동조달 틀과 연결되어 있다. 향후 노르웨이·리투아니아·라트비아 물량도 같은 기본계약 아래 폴란드 군비청을 통해 계약될 수 있다. 이는 단일 장비의 도입 소식이 아니다. 유럽의 공동수요가 국내 생산기반을 지지하고, 국내 생산기반이 다시 동맹의 공급안보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실제 계약으로 나타난 사례다.

편집자 주: 30억 즈워티는 2026년 9월 11일 유럽중앙은행(ECB) 기준환율(1유로 = 4.325즈워티 = 1,556.56원)로 약 1.1조 원이다. 본문의 1.9조 원은 같은 틀의 기본계약 규모인 약 18.5억 유로(80억 즈워티, 원화 약 2.9조 원)를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표기로 보인다. 근거: ECB 기준환율, 이행계약 약 30억 즈워티, 기본계약 80억 즈워티.

‘즉시 전력’과 ‘전시 지속성’을 동시에 사는 유럽

우크라이나전은 유럽에 세 가지 사실을 각인시켰다. 첫째, 탄약과 미사일은 보유량만큼이나 증산 능력이 중요하다. 둘째, 무인기·대드론·전자전 기술은 수년 단위가 아니라 수주 단위로 개선되어야 한다. 셋째, 전차·자주포·방공체계의 전투력은 플랫폼 성능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예비부품, 정비교범, 진단장비, 숙련 정비인력, 손상복구와 보충재고가 가동률을 결정한다.

MSPO 현장 토론에서도 이러한 인식은 분명했다. 산업주권의 기준은 완제품을 국내에서 조립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작전의 연속성을 국내 또는 신뢰 가능한 동맹 공급망 안에서 보장할 수 있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탄약, 현장정비, 설계변경, 수리부속, 교육훈련, 기술자료와 공급망이 끊기지 않아야 장비는 전투력으로 남는다. 폴란드에서 국영 방산그룹은 체계통합자 역할을 맡고, 민간기업은 기술·생산 유연성·수출 역량을 제공하는 동반자로 결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했다. 이는 특정 국가만의 논리가 아니라, 유럽 전반의 정책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EU의 Readiness 2030은 방공·미사일방어, 포병, 미사일·탄약, 드론·대드론, 사이버·인공지능·전자전, 지상전 및 해양 분야의 능력 공백을 공동으로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목표는 2030년까지 전시 수준의 준비태세를 갖추는 데 있다. 이를 위해 EU는 공동수요를 모으고, 생산능력을 키우며, 전략비축과 군사기동을 연계하려 한다. 핵심은 국방비의 단순 증액이 아니다. 회원국별로 분절된 조달을 다년 수요, 공동구매, 상호운용성, 공급망 회복력의 체계로 바꾸려는 시도다.

SAFE와 EDIP는 이 변화의 제도적 기반이다. SAFE는 최대 1,500억 유로의 장기대출을 통해 회원국의 공동조달과 유럽 방산기반 투자를 지원한다. 원칙적으로 2개국 이상이 공동조달해야 하며, 최종제품 부품 원가 중 EU·EEA-EFTA·우크라이나 밖에서 유래한 비중은 35%를 넘을 수 없다. EDIP는 2026~2027년에 15억 유로를 투입해 생산증강, 공동조달, 혁신기업, 그리고 우크라이나 방산기반과의 공동사업을 지원한다. 유럽은 이제 ‘유럽산 장비를 우대하자’는 수준을 넘어, 유럽 안에서 설계·개량·생산·정비·공급이 가능한 산업망을 만들어야 예산과 수요를 연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폴란드는 구매자가 아니라 동부전선의 산업 거점이 되고 있다

폴란드는 이 변화를 가장 빠르게 실행하는 국가 중 하나다. 폴란드의 전략은 해외 장비를 대규모로 들여오되, 그 장비가 자국의 생산·정비·개량·수출 기반으로 남도록 계약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PIORUN의 공동조달은 폴란드산 방공무기가 유럽의 수요를 흡수하는 사례다. MSPO에서 발표된 수동탐지레이더와 해상기뢰제거 장비 계약, 무인·대드론·전자광학·시뮬레이션 분야의 협력 확대도 같은 맥락에 있다. 폴란드는 전력을 구매하면서 동시에 현지 공급망, 정비능력, 훈련, 데이터와 설계역량을 쌓고 있다.

한국 방산에는 이미 중요한 선례가 있다. 2025년 8월 체결된 K2 전차 2차 이행계약은 2026~2030년 180대 공급, 그중 61대 K2PL의 Bumar-Łabędy 최종조립을 담고 있다. 계약에는 교육·군수지원 패키지와 충분한 탄약, 정비장비·시험장비·기술문서가 포함됐다. 또한 폴란드 산업 내 최종조립과 완전한 운용·정비 능력을 세우고, 차체·포탑, 현수장치, 주포 및 자동장전장치 생산을 위한 기업 간 협력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는 한국이 폴란드에서 단순 수출자가 아니라 현지 산업기반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선례가 자동으로 유럽 시장 전체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SAFE의 원산지·지배구조·보안 조건은 한국 본사가 완제품을 생산해 유럽 고객에게 직접 인도하는 전통적 수출방식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이 SAFE 수혜 조달에 참여할 수 있는지는 각 조달사업의 법적 요건, 부품 원가구성, 보안보증, EU 측 협정 또는 예외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한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제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지화가 선택지가 아니라 입찰자격과 경쟁력의 조건이 되는 시장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 방산의 다음 단계: ‘수출 패키지’에서 ‘유럽 운용생태계’로

한국 방산이 폴란드와 유럽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납기와 가격이라는 기존 강점 위에 다섯 가지를 더해야 한다.

첫째, 제안의 중심을 플랫폼에서 전시 지속성 패키지로 옮겨야 한다. 고객이 구매하는 것은 전차·자주포·항공기·다연장로켓 자체가 아니라 전시에 일정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초기 예비부품, 정비교범, 진단·시험장비, 현지 정비인력 양성, 전장피해평가수리 체계, 탄약 및 핵심부품 보충재고를 하나의 성과지표로 제시해야 한다. ‘인도 후 지원’이 아니라 계약 단계에서 가동률·수리시간·부품조달시간을 함께 보증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둘째, 폴란드를 단순한 최대 고객이 아니라 유럽 동부의 공동생산·MRO 허브로 설계해야 한다. K2PL 최종조립과 정비기반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폴란드 기업이 부품생산, 소프트웨어 통합, 체계개량, 시험평가, 지역 정비 및 제3국 수출지원에 참여해야 한다. 한국 기업은 PGZ 계열사, 폴란드 민간기업, 대학·시험기관과 함께 단계별 현지화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때 ‘기술이전’은 조립 매뉴얼 제공이 아니라 설계변경, 구성관리, 결함분석, 성능개량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셋째, SAFE·EDIP 대응형 사업구조를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는 폴란드 법인 하나를 세우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별 부품 원가와 원산지를 추적하고, EU 내 대체공급선과 전략부품 재고를 마련하며, 정보보호·기밀취급·지배구조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지 파트너와의 공동제안, 유럽산 부품의 확대, 공동조달 참여국을 고려한 수요 통합이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한국 정부의 수출금융과 기업의 투자도 EU 재원과 충돌하지 않도록 역할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넷째, NATO 상호운용성을 ‘홍보 문구’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실증자료으로 제시해야 한다. 폴란드군과 유럽 고객이 요구하는 것은 NATO 표준에 부합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실제 통신·피아식별·지휘통제체계 연동, 탄약·부품 호환성, 전자전 환경에서의 운용, 정비절차와 교육체계의 호환성이다. 한국 장비의 강점을 유럽식 임무체계에 연결하려면 STANAG, Link-16, IFF, 폴란드 지휘통제체계, 사이버보안 및 탄약운용에 대한 공동 시험·인증·운용교범을 조기에 완성해야 한다.

다섯째, 우크라이나전의 교훈을 제품 개발 주기에 반영해야 한다. 유럽은 드론과 대드론, 전자전, 표적획득, 무인체계의 기술 주기가 매우 짧아졌다고 본다. 한국 기업은 대규모 플랫폼의 안정적 양산 능력에 더해, 현지 군·산업·연구기관이 제기하는 개선요구를 수개월 안에 시제·시험·양산으로 연결하는 체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인체계가 전통 화력과 경쟁한다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다. 포병, 장갑, 방공, 감시정찰, 전자전과 무인체계를 결합해 생존성과 타격효과를 높이는 통합 해법이 필요하다.

결론: 유럽의 신뢰는 공장에서 완성된다

MSPO 2026이 전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유럽 방산시장은 커지고 있지만, 외부 공급자에게 무조건 열리고 있는 시장은 아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전의 충격 속에서 조달을 산업정책으로, 산업정책을 전쟁억제와 작전지속성의 수단으로 바꾸고 있다. 앞으로 계약의 경쟁력은 장비의 가격과 납기만으로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국내외 공급망의 회복력, 탄약과 부품의 지속 공급, 현지 정비와 개량, NATO 상호운용성, 유럽 공동조달 제도와의 정합성까지 입증해야 한다.

한국 방산은 속도, 품질, 대규모 양산 능력, 그리고 이미 축적된 폴란드 협력 경험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강점을 ‘더 많은 완제품 판매’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폴란드와 함께 유럽의 전시 지속능력을 만드는 공동 산업 파트너로 전환하는 일이다. 한국 기업이 폴란드의 공장과 정비창, 시험장, 공급망, 훈련체계 안에서 신뢰를 쌓을 때, 폴란드는 단지 하나의 수출시장이 아니라 한국 방산이 유럽 안보산업에 뿌리내리는 전략 거점이 될 것이다.

원문 출처

이 글은 반창고뉴스(2026년 9월 17일)에 게재된 필자의 특별기고를 옮겨 실은 것입니다.